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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락에 죽고 쾌락에 살던 고대 로마의 성문화에 대해 입을 좀 털어볼까 합니다.
고대 로마는 지중해의 주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엄청난 넚이의 영토를 차지했던 제국이죠. 거대한 영토를 소유했던 만큼 그리고 엄청난 문화적 학문적 영향력을 끼쳤던 만큼 고대 로마는 유럽 전역의 뿌리가 되었습니다. 유럽의 문화부터 법과 군사 체제같은 분야들은 고대 로마를 빼고 설명할 수 없을 정도이죠.
이렇듯 엄청난 영향력을 가졌던 고대 로마가 후대에 남긴 것들 중에는 다소 불편할 수도 있고 이해 하기 힘든 부분도 있는데 바로 성문화였습니다.
고대 로마는 쾌락에 죽고 쾌락에 살았다는 말이 과장으로 보이지 않을 만큼 성에 대한 태도가 적극적이었고 개방적이었죠. 사실 고대 로마 뿐만 아니라 성은 군사와 경제 못지 않게 인류의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유명한 책인 총균쇠처럼 성에 대한 관점으로 역사를 보는 책이나 논문들도 많죠.
그리고 고대 로마는 고대라는 말이 어색할만큼 고도로 발전된 문명을 보여줬습니다. 군사나 물론이고 정치나 예술의 분야에서도 고대 로마의 영향은 아직까지도 우리의 곁에 있죠.
사회가 발전하면 발전할수록 인간의 욕망은 그리고 개인의 욕구는 필수가 아닌 선택적인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물론 성은 인간의 생존에 필수적인 번식과 연결되는 요소이긴 하지만, 고대 로마나 고대 그리스가 보여준 성에 대한 문화는 순수하게 번식만을 추구했다고 보긴 어렵고 사실상 선택에 의한 쾌락 추구였죠.
쉽게 말하자면 살만해지면서 권력욕 성욕과 같이 욕망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피어났던 것입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폭력과 성이 엉켜있던 고대 로마의 이바구 시작해 볼까요?
먼저 고대 로마의 개방적인 성문화를 주도했던 사람들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인지 알아보죠. 일반적인 생각으로는 개방적이고 문란한 문화라고 하면 돈있는 귀족들과 상대적으로 지위가 낮고 출세를 원했던 여성들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고대 로마에서 누구보다 쾌락을 추구하며 성에 대한 문화를 이끌었던 사람들은 바로 황제였죠.
고대 로마의 황제는 국내에서 뿐만 아니라 지중해 전반을 아우르는 최고의 권력자였고 감히 그 누구도 대항하지 못하는 막강한 힘의 소유자 였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바탕으로 황제들이 즐기고 원했던 것은 보다 큰 쾌락과 자극이었죠.
폭군이라 불리던 일부의 황제들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황제들에게 해당되는 이야기입니다. 다른 사내들의 아내를 취하고 무고한 사람들을 사지로 몰아 넣었던 칼리쿨라와 조카인 네로도 쾌락에 빠져 살았지만 성인이라 불리며 악티움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아우구스투수같은 성군도 쾌락을 가장 우선으로 추구했던 황제였죠.
아우구스투스는 생전에 능력과 인품이 모두 뛰어났던 인물로 평가 받는 황제입니다.하지만 아우구스투스는 다른 사람의 아내를 빼앗는 것은 기본이고 매일 밤마다 수많은 처녀들과 함께 했죠. 심지어 아우구스투스의 아내인 리비아는 아우구스투스를 만나기 이전에 이미 다른 사람과 결혼해서 임신 중인 상태였습니다. 아우구스투스는 그런 리비아를 가로챈 것이었죠. 그렇게 빼앗아온 리비아에게 아우구스투스는 매일 밤 자신의 침실에 들일 여인들을 심사하도록 지시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러니한 사실은 매우 엄격한 로마의 간통법을 만들어낸 당사자가 바로 아우구스투스이죠. 황제도 이런데 당연히 일반 시민들도 거리낌없이 쾌락을 추구했습니다. 대표적인 게 고대 그리스와 같이 고대 로마에도 성을 사고파는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죠. 사실 고대 그리스보다 로마가 좀 더 정도가 심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성을 사고파는 일에 종사했습니다. 사람들이 많았다는 뜻은 시장이 컸다는 뜻이었겠죠.
종류와 방식도 다양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성을 사고파는데에 참여했다는 것보다 놀라운 것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거래가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물론 고대 로마에도 상점가들이 모인 번화가처럼 성을 사고파는 곳은 존재햇지만 대부분의 거래는 전혀 문란하지 않거나 의외의 장소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대 로마는 특이하게 목욕 문화가 상당히 발달했는데 목욕 문화가 발달햇던 이유는 로마인들과 외국인들의 구분을 위해서였습니다. 고도로 발달한 문명의 로마인들은 야만적인 문명과 자신들을 구분하길 원했죠. 목욕이야말로 야만인과 문명인을 구분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던 것입니다. 고대 로마의 목욕 문화는 순식간에 유행하기 시작했고, 공중 목욕탕은 전국 곳곳에 퍼져 성행하게 되었죠. 목욕탕 문화는 경쟁과 발전을 거듭했고, 운동이나 마사지를 즐기고 간단한 식사까지 할 수 있는 장소로 발전했습니다.
단순하게 목욕만을 위한 장소에서 더욱 다양한 서비스를 즐길수 잇는 곳이 된 것이죠. 하지만 다른점이 하나 있었는데 마사지같은 서비스 말고도 원한다면 관계를 가질 수 있었습니다. 목욕탕에서도 욕구를 해결하기 원하는 사람들이 생겨나면서, 수요가 생기면 공급도 자연스럽게 생기기 시작한 것이죠.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워낙 개방적이었으니까요.
심지어는 나중에는 두개가 아예 하나의 사업으로 인식되기도 했습니다. 목욕탕에 간다는 말은 관계를 한다는 말과 다를 것이 없어진 것이죠. 공중 목욕탕에서 가장 흔하게 거래가 이루어졌을 뿐이지 목욕탕에서만 관계를 가진 것은 아닙니다. 목욕탕 만큼이나 활발한 시장 중 하나는 바로 극장이었죠. 고대 로마의 극장에서 공연하던 연극들은 대부분이 관계를 묘사하는 성인극이었습니다. 주요 관객들도 남성들이었죠. 관객들은 공연을 보다가 혼자 욕구를 해결하기도 했지만, 여배우를 초이스해 관계를 가질 수도 있었습니다.
서로 눈이 맞아서 관계를 가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사고 파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죠. 다양한 장소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종사했던 만큼 여자들을 부르는 말도 다양했습니다. 건물의 입구나 인적이 활밣나 장소에서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채 서서 남자들을 유혹했던 여자들은 도리스 라고 불렀고 늑대 울음소리를 흉내내며 유혹하는 여자는 루파라고 불렀습니다.
장소에 따라서도 명칭이 달라졌는데, 술집에서 거래를 했던 여성들은 블라티다 라고 불렀고 목욕탕에 마사지와 함께 거래를 했던 여성은 펠라트릭스라고 불렀습니다. 심지어는 고환을 제거한 상태로 남성에게 성을 팔던 스파도네스나 틀라시아이도 있었죠.
이들의 공통점은 사회적으로 낮은 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는 점입니다. 즉, 고대 로마의 성문화는 계급과 연관이 깊었다는 뜻이죠. 다만 그리스는 능력에 따라 외모에 따라 달라졌지만 고대 로마에서는 기준이 계급이었습니다. 낮은 계급에 속한 사람들은 남성이라도 자유시민이 아니라면 자신이 원하는 거래를 할 수 없었죠.
그 중에서도 가장 낮은 계급인 노예들은 자신의 주인이 원한다면 바로 몸을 바쳐야 했습니다. 오직 자유시민이라는 계급에 속한 남성만이 자신이 원하는 상대와 주도적인 관계를 할 수 있었죠. 자유시민 남성들은 관계를 자신이 원하는대로 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지위도 압도적이었습니다. 그 누구라도 자유시민에 해당하는 남성의 신체를 훼손할 수 없었고, 만약에라도 자유시민에 해당하는 남성에게 성적인 착취를 범했을 경우에는 사형이었죠.
물론 가해자가 자유시민 남성일 경우에는 사형을 선고 받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자유시민 남성들의 지위와 권리만 강조했는데 그렇다면 자유시민에 해당하는 여성들은 어땠을까요?
자유시민 여성들은 강제적인 관계에 대해서는 보호 받았지만 불륜을 하게 되면 엄격하게 처벌받았습니다. 이런 제도는 어디까지나 자유시민 남성의 소유물을 지키려는 것이었죠. 쉽게 말하자면 여성이 자유시민 남성과 결혼할 경우 남성의 소유물이나 재산 정도로 취급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성의 인권이 바닥이었다는 점에서 고대 그리스와 고대 로마는 상당히 비슷하죠.
고대 로마도 그리스 못지 않게 남성 중심적인 사회였습니다. 그래도 그리스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상관 없이 자신의 성에 있어 자유로울 수 있었지만 로마는 여성에게 상당히 엄격했죠. 남성끼리의 동성애는 있을 수 있지만 여성끼리의 동성애는 용납될 수 없었습니다. 이렇듯 고대 로마의 문화는 쾌락을 중요시하면서도 정해놓은 금기가 존재했습니다.
물론 고대 그리스에 비하면 말이죠. 좋게 말해서 금기이고 조금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모순으로 볼 수도 있고, 명백한 인권의 실추입니다. 사치와 쾌락 그리고 폭력의 문화를 가진 로마는 2세기를 넘어가면서 경제적으로 그리고 정치와 군사적으로도 크게 흔들리며 위기를 맞이하죠. 적극적이고 쾌락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로마는 사라져갔습니다.
역사를 보면 풍요롭고 문화가 발달한 한마디로 살만한 시대에는 항상 개방적인 문화가 꽃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꽤 살만한 시대가 아닐까 생각이 들다가도 최근 여러 나라들이 돌아가는 꼴을 보니 점점 암울한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으로 보이네요.
쾌락에 죽고 쾌락에 살던 고대 로마 이바구 재미있으셨나요?! 그럼 다음엔 더 재미진 이야기 보따리를 가져다가 써 놓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