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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을 나타내는 말 중에 지대물박이란 말이 있습니다.

"땅은 넓고, 산물은 많다" 라는 뜻이지요, 그 중엔 온갖 식재료도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중국은 수천 년 간 정말 다양한 요리를 발전시켜왔습니다. 중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돼지고기 요리만 해도 1천 5백 종이 넘습니다. 그 중 송나라 시인 소동파가 만들었다는 동파육과 모택동이 즐겼다는 홍소육이 유명하지요.

그럼 중국 요리는 총 몇 가지나 될까요?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누군 8천 가지라고 하고, 누군 10만 가지는 될 거라고 합니다. 색재료와 조리 방법에 따라 수많은 병형이 가능하니 사실 이를 세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할 것입니다. 다만 "하늘에선 비행기를 빼고, 땅에선 식탁을 빼고, 바다에선 배와 잠수함만 빼곤 다 먹는다" 고 스스로 말하는 데서 그 무궁무진함을 짐작할 뿐입니다.

사실 중국인들은 지금은 아니지만 먼 과거엔 생선회도 먹었습니다. 논어를 보면 공자가 "가늘게 뜬 생선회" 를 즐겼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중국 문헌에서 회에 관한 언급은 10~13세기의 송나라 때까지 계속 이어집니다. 그 후 기록이 갑자기 그치는데  중국인들이 생선회를 안 먹게 된 건 내륙의 유목민인 몽골 지배의 영향 때문으로 보입니다.

어쨌든 중국에는 요리 종류도 많고 볶고 굽고 삶고 찌고 끓이고 데치고 등 조리법도 다양해 40여 종이 넘습니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압도적인 건 역시 기름에 볶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흔히 먹는 한국식 중화요리인 짜장면이나 짬뽕, 탕수육도 기본은 기름입니다. 중국에서 먹는 중국 요리도 마찬가지여서 음식을 다 먹고 나면 십중팔구는 그릇 바닥에 기름이 흥건히 고인 걸 보게 됩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중국 요리의 80%가 기름에 볶거나 튀기는 조리법을 사용합니다. 공자가 먹었던 생선회도 지금은 튀겨 나오는 게 대부분이죠. 신선한 야채 역시 절대 날로 먹지 않고, 일단 기름에 볶고 봅니다. 물론 중국인들은 기름에 볶는 게 아니라 야채는 기름에 살짝 데친다고 말합니다.

중국에선 어쩌다가 이렇게 기름진 음식이 발달하고, 좋아하게 된 것일까요?

그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는 수질 문제입니다.

중국의 물은 대부분 석회 성분이 많은데다, 무엇보다 누런 진흙이 잔뜩 섞여 있습니다. 아무리 오래 흙 성분을 가라앉히고 끓여 봐야 물에서 나는 흙내를 완벽히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발전한 게 차 문화입니다. 향이 강한 찻잎이 중국 물 특유의 흙내를 제거해 주는 거죠.

이 물로 요리를 하면 어떻게 될까요? 역시 마찬가지로 음식에서 역겨운 냄새가 나는 것은 물론 여러 미생물로 인해 음식의 부패도 쉽게 진행됩니다. 그래서 중국에선 오래전부터 최대한 물을 적게 쓰는 조리법을 발전시켜왔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찜 요리입니다. 간단히는 증기를 이용해 쪄내는 만두를 생각하면 될 거 같네요. 지금도 찜은 볶음 다음의 비중을 차지하는 중국의 조리법입니다. 중국 요리에 자주 사용하는 육수도 좋지 않은 물 때문에 만들어졌습니다. 물론 육수는 음식의 맛을 더하기 위한 용도입니다. 하지만 중국에선 물에서 나는 흙내를 없애기 위해 파와 생강, 고기나 뼈 등을 넣고 끓인 게 그 시작입니다.

그렇다고 찜과 육수로 그 모든 음식을 다 만들 수는 없습니다. 중국인들은 다른 해결책을 찾아내야 했습니다. 그게 바로 물 대신 기름을 사용하는 것입니다. 야채든, 고기든, 생선이든 아주 높은 온도의 기름은 표면에 붙은 흙이나, 모래, 석회 등 그 어떤 이물질도 분리시켜 줍니다. 흙냄새 같은 잡내가 일거에 해결되는 거죠. 물론 지금이야 수도의 보급으로 물에서 흙냄새가 거의 나지 않지만 식용 기름을 이용한 음식은 이미 중국인들의 입맛을 확고하게 길들여 놓았습니다.

두 번째는 기후 및 환경 문제입니다.

중국의 문명은 지금의 서안 부근에 있는 황토지대에서 시작되었다는 게 가장 유력한 설입니다. 황토의 퇴적으로 농사엔 최적이지만 대신 무척 건조한 곳이죠. 때문에 이런 곳에서 살려면 몸에 기름기가 많아야 합니다. 애초부터 기름기가 많은 음식이 필요한 환경이란 얘기입니다.

중국은 송나라 후 원, 명, 청을 거치며 약 800년 간 3, 4차 한랭기를 맞았습니다. 이는 중국 북부의 나무 식생에 악영향을 끼쳤고, 장기적으론 전국적인 땔감의 부족을 가져왔습니다. 난방도 못할 판이니 요리는 말할 것도 없었습니다. 곱고 찌는 것은 많은 연료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기름은 가열시간이 상대적으로 훨씬 짧아도 많은 요리를 해낼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수백 년간 볶음은 가장 경제적인 요리였습니다.

세 번째는 오랜 농경문화 때문입니다.

농경사회에선 부지런한 게 최고의 미덕입니다. 노동 시간이 길면 길수록 생산량도 덩달아 늘어났습니다. 그러니 음식을 만듥 먹는 시간도 최대한 줄이는 게 당연히 유리했습니다. 이거라면 식용유가 최고였습니다. 센 불에 식용유로 볶거나 튀기면 2~3분 만에 요리 하나씩 뚝딱 만들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찌거나 구운 요리에 비해 볶은 요리는 보관 기간도 더 길었고, 남은 음식도 기름에 다시 볶으면 또 맛있게 먹을 수 있었습니다. 기름은 힘든 육체노동을 견디게 해 줄 칼로리까지 높았으니 늘 시간에 쫓기는 농민으로선 마다할 이유가 조금도 없었습니다.

네 번째는 오래전부터 식용유가 발달한 덕입니다.

기름에 볶거나 튀기는 요리가 발전하려면 식용류가 싸고 흔해야 한다는 게 전제조건입니다. 식용유는 크게 식물석 기름과 동물성 기름으로 나뉩니다. 다른 나라들처럼 중국 역시 아주 오래전부터 동물성 기름을 사용해왔습니다. 하지만 동물성 기름은 대중화되기엔 구하기도 힘들고, 값이 비쌌죠.

그러다가 식물 열매에 기름이 들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기원 전후 무렵의 한나라 시대에 처음 식물성 기름이 등장했습니다. 이 때 콩기름과 유채기름, 참기름 등 이미 다채로운 식물성 기름이 개발되었는데, 그 중 가장 많이 사용된 건 깨에서 짜낸 참기름이었습니다.

뭐니 뭐니 해도 볶는 요리가 대중화된 건 땅콩기름 덕입니다. 4세기의 동진 시대에 전래된 땅콩은 중국 전역으로 퍼지다가 10세기경의 송나라 시대에 이르러선 일반 백성들도 쉽게 먹을 수 있을 정도로 흔한 기름이 되었습니다. 더구나 땅콩기름은 100도 이상 넘어가면 증발해 버리는 물과 달리 300도 이상이 되어도 타지 않았기 때문에 볶음 요리엔 정말 최적의 식용유였습니다.

여기에 중국 특유의 프라이팬인 웍은 대중화까지 이루어져 송나라 이후 기름에 볶거나 튀긴 요리는 지금까지도 줄곧 중국 요리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웍은 마치 가마솥 같아서 온도를 빨리 높은 온도에 오르게 하고, 열의 전달을 고르게 하지요.

마지막으로는 맛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식용유가 물의 흙냄새도 없애고, 시간도 벌어 주는 등의 여러 장점이 있다 하더라도 맛이 없었다면 중국인들은 분명 다른 대체수단을 찾았을 것입니다. 강한 불에 식재료를 재빨리 볶아내면 영양소를 거의 파괴하지 않고 재료 본연의 맛을 고스란히 살릴 수 있다고 합니다. 채소라면 마치 보호필름을 붙이듯 기름으로 살짝 코팅해 놓은 효과를 본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중국인들이 지금도 가장 많이 사용하는 땅콩기름 외에도 파기름, 고추기름에서 보듯 중국에서 기름은 단순히 음식을 익히는 게 아니라 맛의 풍미를 극적으로 높여주는 조미료의 역할까지 합니다.

어쨌든 지금도 중국인들의 식용유 사랑은 아무도 못 말립니다. 3년 전 모두 철수 했지만, 한 때 롯데마트가 중국의 대도시마다 진출한 적이 있었습니다. 가장 많이 팔린 상품이 무엇이었을까요? 그건 식용유였습니다. 여전히 중국 마트에 가면 우리 캔맥주 엮듯 식용유 4~6개를 한 묶음으로 파는 걸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심지어 식용유는 핸드폰 살 때 5리터짜리를 경품으로 끼워주기도 합니다. 그래서 중국인들 사이에선 "휘발유 값이 오르는 건 참아도, 식용유 값이 오르는 건 참을 수 없다." 는 얘기도 있습니다. 일찌감치 생선회도 즐기셨던 공자는 "음식을 안 먹는 사람은 없지만, 진정 맛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공자가 지금의 시대에 부활해 웍으로 만들어내는 튀김과 볶음 요리를 모든 중국인들이 즐기는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센 불에 지글지글 끓어오르는 기름에 넣기만 하면 심지어 신발도 맛있어지는 마법이 일어나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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