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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강헌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이 남자의 꿈은 사실 시인이 되는 것이었다고 한다.
1988년 10월 8일 서울 영등포교도소에서 충남 공주교도소로 이감 중이던 죄수 열두명은 호송 차량에서 탈출을 감행한다. 이들 중 지강헌이 이끄는 네명은 서울 시내 여러곳의 가정집을 전전하며 경찰들의 감시망을 피해 어디론가 향한다. 이들의 목표는 전두환의 집을 급습하는 것.
하지만 일주일 뒤인 10월 18일 은평구의 한 주택에 침입한 뒤 그 집에 살던 가족을 인질로 잡고 경찰과 대치한다. 수천명의 경찰과 취재진이 좁은 주택가를 가득 채웠던 당시 모습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최종적으로 인질범 한명이 자수하고 세명이 자살하는 것으로 끝마쳤는데, 다힝해도 인질로 잡혔던 가족은 무사했다. 사실 지강헌 일당은 그동안 전전했던 가정집들의 주민에게는 아무런 상해는 입힌적이 없었다.
지각헌의 탈주극은 당시에도 큰 화제였고, 이후에도 티비 드라마<수사반장>과 다큐멘터리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2006년 영화<홀리데이>로 각색 되어 제작되었고 최근에는 <응답하라 1988>의 한편에서 이 사건이 다루어졌었다. 이 사건이 이토록 주목받았던 것은, 한국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범죄자들의 탈주, 총기 범죄, 인질극, 그리고 지강헌이 마지막에 요청한 비지스의 노래 홀리데이까지 온갖 극적인 요소를 다 갖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지강헌의 짧은 유언이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
지강헌은 여러 차례 잡범죄를 벌인 전과자였지만, 자신은 560만원을 훔친 것 때문에 징역과 보호감호로 무려 17년간 수감생활을 하여야 하는데 반해, 수백억원에 달하는 횡령, 탈세, 뇌물수수를 범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은 겨우 7년의 징역형을 선고받는 것에 큰 불만을 품고 벌인 일이다. 전경환은 실제로 노태우 정권 말에 징역 3년을 마치고 가석방 된 뒤 특별사면을 통해 복권되기까지 한다. 이러한 황당한 상황를 고발한 것이 바로 ‘유전무죄 무전유죄’였다.
이 말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명언이라 할만큼 뼈져리게 사뭇치는 단어다.
아직도 부동산에 정신을 못차리고 허우적거리는 인간들, 대기업 총수들의 비열한 모습, 그 자녀들의 더러운 일상… 그사이에서 콩꼬물 빨고 있는 정치인. 이젠 구역질이 날 정도로 뉴스에 보도되어 나오고 있지만 정작 처벌은 솜방망이다.
오죽하면 실제 대한민국의 부장판사로 있던 사람도 ‘유전무죄 무전유죄’가 한국 사회의 엄연한 현실이 맞다. 라고 이야기 했을까??
유전무죄 무전유죄는 현재 진행형을 넘어 유전결혼 무전비혼, 유전면제 무전입대, 유전취업 무전실업 이라는 말이 나올정도로 극명하게 2020년의 한국은 부익부 빈익빈으로 나뉘어져 있다.
한국은 지금 헬조선이다.
고령화 사회가 급속도로 찾아오지만, 출생율은 0.8%를 기록할수 밖에 없는 주된 원인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가끔씩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