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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선 "3대가 하는 집이 아니면 요리도 아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보통 1대를 20년으로 치니 60년 정도 된 음식점은 발에 치일 정도로 많다는 얘기입니다. "좀 됐네" 라는 얘기를 들으려면 적어도 100년의 전통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오래된 가게를 일본에선 '시니세' 라고 합니다.
우리도 요즘 많이 쓰는 노포라는 단어는 일본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100년 됐다고 특별한 대접을 받지도 못합니다. 그냥 노포로서의 기본 자격이 된 정도입니다. 그보다 오래된 음식점이 부지기수이기 때문입니다.
음식점만이 아닙니다. 떡집도 과자집도 반찬집도 찻집도, 심지어는 도장파는 가게도 대를 이어 수백 년씩 같은 자리에서 장사를 합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에서 100년 이상 된 가게나 기업은 무려 27,300개나 됩니다. 이중 200년 이상 된 가게는 3,937개 입니다. 아직 놀랄 단계가 아닙니다.
500년 이상 된 가게도 147개나 있습니다. 아직 놀랄 단계가 아닙니다. 1000년 이상 된 가게도 있습니다. 그것도 무려 21개나 됩니다. 곤고구미 라는 기업이 있습니다. 올해 578년에 창립된 고건축 전문 기업입니다. 1400년이 넘은 세계에세 가장 오래된 기업입니다.
후지산 근처의 야마나시현에 가면 '게이운칸' 이라는 여관이 있습니다. 705년에 지어졌으니 역사가 1300년도 넘습니다. 이 여관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숙박업소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정말 어마어마하지 않습니까? 무려 52대에 걸쳐 가업을 이어오고 있으니 이 가문은 여관일을 하라는 역사적 사명을 띄고 이 땅에 태어난 것 같습니다.
왜 이렇게 일본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오래된 가게가 많을까요? 그리고 오랫동안 대를 이어가며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이에 대해 한국에선 "일본인들에겐 전통과 신의를 중시하는 기질이 있으며, 장인 정신과 기술을 높이 치기 때문" 이라고 분석합니다. 그리고 이를 가족경영의 장점으로 연결하곤 합니다. 일정 부분 맞는 말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깊은 곳에는 1400년간 일본을 지배해온 와(和) 가 있습니다.
와는 일본의 오래된 가게 뿐 아니라 대부분의 일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열쇠입니다. 와는 한문으로 우리가 조화나 화목 등에 쓰는 화할 화(和)자 입니다. 우리 음식을 한식(韓食)이라고 합니다. 그럼 일본 음식을 뭐라고 할까요? 일식(日食)? 아닙니다. 그건 우리나라에서나 쓰는 말입니다. 일본에선 화식(和食 와쇼쿠)이라고 합니다.
우리 옷은 한복이지만 일본 옷은 화복(和服 와푸쿠)입니다. 한국 과자는 한과라 하지만 일본 과자는 화과자(와가시)입니다. 이 단어들에서 보듯 화(和), 즉 와가 그냥 일본입니다. 일본의 와를 가장 쉽게 풀이하면 "사이좋게 지낸다." 는 뜻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사이좋게 지내게 될까요? 그건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중심에는 천왕이 있습니다. 그 주위에는 천왕을 보좌하는 귀족이 있습니다. 귀족의 주위에는 사무라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둘레로 농공상과 천민이 있습니다. 천왕은 천왕의 일을 귀족은 귀족의 일을 사무라이는 사무라이의 일을 그리고 농공상과 천민은 그들의 일을 하면 세상은 자연 평화로워 진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 구조가 작동하게 하려면 우선 천왕과 귀족이 일반 백성의 계급과 할 일을 정확히 정해줘야 합니다. 여기에 개인의 개성이란 건 없습니다. 모두 같은 틀 속으로 집어넣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계급에 맞는 분수를 지키게 해야 했습니다. 일본인들은 자신의 계급에 따라 옷도 음식도 집도 달리해야 했습니다. 대문 앞에는 마치 문패처럼 왕과 귀족이 정해준 계급과 직업을 내걸어야 했습니다.
인도의 카스트 같은 지독한 신분제 사회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 꽉 짜인 틀을 위험하게 만드는 존재는 공공의 안녕을 위해 즉시 제거되어야 했습니다. 그 일은 사무라이가 맡았습니다. 이 와 사상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천왕과 귀족만 좋은 철저한 계급사회란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일본 고대국가 시절 쇼토쿠태자가 만든 이 와 사상은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주 오랫동안 일본인들은 이주의 자유가 없었습니다. 중앙에는 천왕을 모시는 실권자인 쇼군이 있고, 지방에는 다이묘(일본 지방영주)들이 있었습니다. 일본인들은 이 다이묘가 지배하는 번에서 태어나고 번에서 죽어야 했습니다. 한정된 지역에서 살아야 했기 때문에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습니다. 남의 영역을 넘보면 분명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건 곧 누군가의 목숨이 끊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내가 일본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우동가게를 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그럼 나에게 주어진 위치는 아버지의 대를 이어 우동을 계속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심히 연구해서 더욱 맛있는 우동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장사가 잘되는 김에 건너 마을 우동가게를 하나 더 내기로 합니다. 그럼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나는 즉시 남의 영역을 침범한 인물로 낙인찍히게 됩니다. 그리고 분수를 어기고 평화를 깼기 때문에 처벌은 불가피합니다. 운이 좋으면 이지메(집단 왕따)입니다. 하지만 대개는 무라하치부를 당하게 될 것입니다. 마을의 그 어떤 일에도 끼워주지 않아 가족 전체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벌입니다. 다른 마을로 갈 수도 없었기 때문에 사는 내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이 정도로 끝나도 운이 좋은 것입니다. 일이 커지게 되면 사무라이가 나섭니다. 사무라이들은 별 다른 이유 없이 일반 백성을 죽여도 괜찮았습니다. 하물며 질서를 깨뜨리는 백성을 죽이는 것쯤은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맛있든, 맛없든 나는 주어진 자리에서만 우동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이상 확대하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습니다. 그건 분수를 넘는 일입니다.
그런데 내 아들은 불행히도 우동 만들기를 싫어합니다. 대신 아들은 운동을 잘해서 사무라이가 되거나 만들기를 좋아해 대장장이가 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용납되기 어렵습니다. 마찬가지로 위치를 이탈한 것이고, 남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 역시 고집하다간 목숨이 날아가기 십상입니다. 그러니 내 아들도 좋든 싫든 우동을 만들어야 합니다.
내게 주어진 위치에서, 내게 알맞다고 정해진 일을 하는 것만이 목숨을 잃지 않고 사는, 그나마 안전한 길이었습니다. 확장하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 있는 일본인들은 그래서 늘 작은 규모로 장사합니다. 장사가 잘 되면 좀 넓힐 만도 하련만 지금도 좀처럼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그리고 한 곳에서 오래 장사하면 단골이 생기게 됩니다. 때문에 아무리 경기가 안 좋아도 망할 일이 없습니다. 수백 년 된 음식점에 가보면 생각보다 규모가 너무 작아 대부분 놀라게 됩니다.
이렇게 망할 일이 없으니 100년도, 200년도, 1000년도 하는 것입니다. 대가 끊이지만 않으면 말입니다. 이게 일본에 오래된 가게가 유달리 많은 근본적인 이유입니다. 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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