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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북아시아에는 일본, 대만, 중국, 싱가포르 같은 쟁쟁한 대소강국들이 도사리고 있는데 유독, 한국만이 IT 강국이 된 이유가 무엇일까요?
한국이 IT 기술이 발달한 데도 원인이 있지만, 각 나라가 사용하는 문자에 가장 큰 원인이 있습니다. 대만과 중국은 한자를 사용하고 일본은 한자와 가나를 혼용하고 싱가포르는 영어를 사용하지만 한국은 세계의 언어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과학적이고 표음문자로 정평이 나 있는 한글을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나라에서 세벌식 한글 타자기를 처음으로 발명한 공병우 박사는 한글은 금, 로마자 알파벳은 은, 일본의 가나는 동, 한자는 철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또한 세계의 언어학자들의 일치된 견해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스즈키 씨가 컴퓨터 자판을 치는 모습을 보기로 합시다.
자판은 서양의 로마자 알파벳입니다. 우리는 24개의 자모판으로 자판내에서 모든 문자의 입력을 단번에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즈키 씨는 '세'를 영어식 발음인 'SE'로 컴퓨터에 입력하는 방법을 씁니다.
각 단어가 영어 발음 표기에 맞게 입력돼야 화면에서 가나로 바뀝니다. 더구나 각 문장마다 한자가 들어가 있어서 쉬지 않고 한자 변환을 해 주어야 하므로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습니다. '추'로 발음되는 한자만 해도 '中'을 비롯하여 20개 이상이나 골라내어 주어야 합니다. 일본어는 102개의 가나를 자판에 올려 가나로 입력하는 방법도 있지만 익숙해지기 어려워서 이용도가 낮습니다.
그럼 중국은 어떤가? 이번에는 중국인 왕 서방이 컴퓨터 치는 모습을 보기로 합시다. 3만 개가 넘는 한자를 어떻게 좁은 자판에서 칠 수 있을 까 하고 궁금해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자판을 들여다보니 서양식 로마자 알파벳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한자를 자판에 벌려 놓기는 애당초 불가능한 일이므로 일본 자판처럼 중국어 발음을 영어로 모사(한어 병음을 기초로)하여 알파벳으로 입력합니다. 단어마다 입력 키를 눌러야 화면에서 한자로 바뀝니다. 한글 자판에 대면 불편하기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게다가 같은 병음을 가진 글자가 20개 정도는 보통입니다.
그 중에서 맞는 한자를 선택해야 합니다. 각별한 열의가 없는 사람은 컴퓨터에서 멀어지기 십상입니다. 한국의 인터넷 문화가 일본과 중국을 앞서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타이핑을 많이 하는 전문직 중국인들은 한자의 획과 부수를 나열한 별도의 자판을 이용합니다. 자판을 최대 다섯 번은 눌러야 글자 하나가 구성되므로 오필자형이라고 합니다. 속도가 빠르다고 하지만 익히기 어려워 일반인은 접근이 어렵습니다. 형편이 이 지경이니 일본과 중국의 인터넷 발달 정도가 한국에 뒤질 수밖에 없게 되어 있습니다.
말레이시아처럼 언어가 여러 가지인 국가들은 컴퓨터 입력 방식 개발 단계부터 골칫거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휴대전화 시대가 도래한 지금 일본과 중국 같은 나라에서는 문제가 더욱 더 심각해졌습니다. 요즘은 모든 정보 통신기기가 휴대전화로 통합되고 있습니다.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낼 때 한글로 5초면 되는 것을 중국 일본 문자는 35초 걸립니다.
한글의 입력 속도가 일곱 배는 빠르다는 얘기입니다. 휴대전화에는 단추가 12개 밖에 없습니다. 휴대전화로 모국어를 완전하게 전송할 수 있는 국민들은 한국인밖에 없습니다. 사실 우리는 단추가 8개만 있어도 됩니다. 모든 모음자는 ㅡ ㅣ 의 세 글자로 만들 수가 있고 모든 자음자는 ㄱㄴㅁㅅㅇ 의 다섯 글자로 만들 수 있습니다. 우리가 휴대전화의 최강국인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대신 로마자는 구성원리가 원시적입니다. 모양만으로는 자음자와 모음자가 구별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휴대전화 단추마다 섞인 순서대로 여러 글자를 배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문자 전송을 하려면 땀을 뻘뻘 흘려야 합니다. 그렇다면 중국과 일본이 우리처럼 IT 강국이 될 수는 있는 길은 없을까요?
중국은 한자를 표음문자로 바꾸고 일본 역시 지금 쓰고 있는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가나식 표음 문자를 보다 능률적인 표음문자로 바꾸어야 합니다. 중국이 경제 분야에서 흑묘백묘론을 주장한다면 문자면에서도 흑묘백묘론을 주장할 때가 반드시 오게 될 것입니다.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 루쉰은 '한자가 망하지 않으면 중국은 망한다.' 고 말했습니다. 한자를 바꾸지 않으면 중국은 IT의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으니까요.
일본도 사정은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이 도쿄올림픽을 실패의 기운으로 마무리한 가운데 과거 화려했던 기술은 이제 크게 빛바랬다는 보도가 나온 적이 있었는데. 블룸버그 통신은 "두 번의 올림픽이 긴 아치 형태의 일본 기술 쇠퇴를 보여준다" 며 일본의 기술 산업 변화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블룸버그는 1964년 일본이 첫 도쿄올림픽을 열었을 당시, 시속 210km 신칸센 고속철을 공개해 첨단 기술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15년 후 소니의 비디오카세트 레코더와 도시바의 플레시 메모리, 게임 산업의 혁명을 가져온 스페이스 인베이더는 세계를 사로잡았고, IT 강국으로 꼽히던 일본은 미국을 제치고, 최대 경제대국으로 떠올랐었죠. 그러나 현재 일본은 역대 두 번째 올림픽 개최를 준비하면서 기술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는 상태입니다. 텔레비전, 녹음기, 컴퓨터의 속도를 이끌던 전성기가 사라진 것입니다.
일본은 한때 '워크맨' 돌풍을 이끌며 혁신을 주도했지만, 이제는 애플의 '아이폰'에게 그 자라를 내줬습니다. 더 굴욕적인 건 한국과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메모리칩 분야에서 일본을 앞질렸죠.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한때 잘나가던 반도체 산업 일부라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일본의 오래된 관행이 이를 바꾸기 어렵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니시가와 가즈미 일본 정보기술(IT)과장은 "고집불통인 일본중심주의를 탈피하고, 관료주의에서 벗어나 재능있는 해외 인재를 고용하는 변화가 필요하다" 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메이드 인 제팬'에만 의존하는 접근방식은 성공하지 못했다" 며 "이번엔 이런 접근을 피해야 한다" 고 강조했습니다. 최근 일본은 반도체 산업의 재건을 위해 업계 1위의 대만 TSMC의 일본 내 웨이퍼 제조공장을 세우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계 각국의 ICT(정보 통신 기술) 개발에 대한 랭킹에서 주도적 선두를 한국이 계속 유지하고 있으며,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이제 10위권에도 들지 못하는 실정입니다.